나무야

식은땀 스며든 커다란 이불을 깔고
천장 위 죽어버린 새카만 벌레를 보며
아마 가장 희미한 기억 속의 공기를 들이키면
원인 없는 조그만 상처는 그제야 피를 흘리고
그 뒤 돋아난 새살은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해
결국 나와 세상은 없던 것이 되어버리겠지

그러니 반드시 돌아가야 해 
치열한 삶들과 화려한 죽음이 가득한 도시로
그러니 반드시 돌아가야 해
잊히지 않기 위해 꿈틀거리는 이들의 도시로


주름진 셔츠라도 재봉선은 존재하지
바닥에 떨어트린 동전도 그림자가 있어
그러나 죽은 도시의 골목에는 가로등이 없고
하염없이 그 곳을 헤매던 난 결국 길을 잃었어
그때 마주친 어린아이 네가 답을 찾아 줬지
어둠을 딛고 있으면 그림자는 사라져
 
그러니 반드시 돌아가야 해 
치열한 삶들과 화려한 죽음이 가득한 도시로
그러니 반드시 돌아가야 해
잊히지 않기 위해 꿈틀거리는 이들의 도시로

난 오래전에 만났던 신도시를 찾고있어
한때 찬란했었던 이 도시의 회색빛 그늘 피해
아름다운 강산이 저 푸른 들판 위에 펼쳐진
번화하고 창성한 그 도시를 찾아 헤매고 있어

신도시

검은 길고양이 물과 장난쳐봐도
어린 아이들 그늘 아래 앉아봐도
삶은 언제나 죽음보다 뜨거웠고
오늘은 여전히 내일보다 시원해

아 제발 빨리 가셔라 뙤약볕 블루스
누가 너를 원하던가 어서 가셔라
아 이제 그만 가셔라 뙤약볕 블루스
누가 너를 원하던가 어서 가셔라

선풍기 에어컨 집에서 반겨주니
머나먼 태양을 증오하기보다는
가까운 그들을 사랑하고 싶다네
우리는 그곳으로 피서를 떠나자

이열치열마저 더이상 안 통해
각자의 대책들은 무용지물이 돼

검은 머리가 익어간다해도
나는 해를 향해 외쳐 뙤약볕 블루스

아 제발 빨리 가셔라 뙤약볕 블루스
누가 너를 원하던가 어서 가셔라
아 이제 그만 가셔라 뙤약볕 블루스
누가 너를 원하던가 어서 가셔라


뙤약볕 블루스

매일같이 찾아오는 아침을 위해
싱그러운 나뭇잎의 초록을 위해
현재를 통해 과거가 된 미래와
마음이 동해 친구가 된 우리를 위해

돛대를 오르내리던 항구의 선원을 위해
너희와 너희의 기쁨을 가로챈 새들을 위해
증명할 수 없는 나의 자유의지와
망명할 길 없는 모든 가족들을 위해

난 바라고 있어
새파란 하늘 위에
이 곳의 평안과 번영을 위해
우리의 끝이 각자의 종말보다 한발 늦기를
바라고 있어

하루를 마치러 오는 달밤을 위해
나무를 심으러 가는 아이를 위해
여태껏 우리 알지 못했던 역사와
이제껏 누구든지 잊길 빌던 꿈을 위해

공사장 한복판에서 쓰러진 사내를 위해
아무도 모르던 진실을 알리려
공연한 거짓을 말한 여인을 위해
흔들다리 위 박자를 맞추어 걷는 군중과
전철역 아래 들어선 가게의 복을 위해


우리들의 인연이 태초에 앞서 기약되었기에 그 끝은 종말보다 한발 늦기를 또한 우리 안에 파고든 믿음의 깊이를 앎이 미처 파헤쳐보지 않기를

내가 너를 바라볼 때면 내 믿음은 증표가 되어
나의 상상 속 화단 아래 묻힐거야

그날의 네가 내 옆에 있어주리란 소망
나의 상상 속 화단 아래 묻을거야

어두운 하늘 아래서 손을 맞잡았던 새벽에
내 마음속 그늘 아래로 들어온 너의 따스함

달이 뜬 단지 안에는 가로등이 켜지고
우리는 단지 꺼져가는 불빛에 속았던거야

네가 나를 바라볼 때면 언제 들킬지 모를 마음
나의 상상 속 화단 아래 묻을거야



상상 속 화단

더러웠던 한때 도시의 바다는 
이제 철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거리 위의 한낱 철든 아이는
다시 보고픈 가족을 꾸렸어

이 곳에서 난 내 삶을 얻었고
삶 속에서 내 자리를 찾았어
그 자리에서 난 내 일을 얻었고
일을 하며 열정을 찾았지

하지만 그 중 무엇도 너를 얻은 날
그녀의 웃음에 비할 순 없는걸
난 그날 내 모든 것의 주인이
너였음을 알았으니까

이 곳에서 난 돈을 잃었고
돈으로 샀던 집을 버렸어
그 집에서 만난 모든 이를 잃었고
그러다 나 자신을 버렸지

하지만 그 중 무엇도 너를 잃은 날
퍼붓던 빗소리에 비할 순 없는걸
난 그날 너를 떠나보낸 뒤 그 소리에
잠에서 깨버렸으니까

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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