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먹고 살기

-유봉재-

구름은 한반도를 거쳐
태평양으로 떠났다
남기고 간 것은 계절의 잔해

산자락에 목숨 끊어진
낙엽들
한숨도 눈물도 말라 버렸다

슬픈 일은
빨리 잊고 살아야
마음 편하다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 나

오늘도 산자락에 앉아
흐르는 구름으로
아린 가슴을 닦는다.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구름먹고 살기

국화꽃                        

-유봉재-

유난히도
국화꽃을 좋아하시던 당신
당신이 그리워
국화꽃을 심습니다
마당가 가득히
심어 놓은 국화는
노랗게 피었습니다
하얀 꽃
노란 꽃
자색 국화꽃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며
곱게 곱게 피었습니다
언젠가 국화꽃 보러
오실 날 있겠지요
당신이 오시는
그날까지
국화꽃 피워놓고
기다립니다.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국화꽃

기차소리                    

-유봉재-

언덕 위에 놓여있는 나의 집은
기찻길 옆 옥수수 밭가에 지어졌다

하늘에 둥근 달도 떠 있고
별들은 폭풍을 치듯 몰아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덜컹대는 기차소리
기차표 한 장 손에 쥐고
친정 갈 때면
시집올 때 보다 더 가슴뛰던
옛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도 창문을 열고
기차소리 들으면
지나간 세월이 주마등 처럼 
흘러간다.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기차소리

나에게도                      

-유봉재-

나에게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무척
나를 사랑했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나
안고 다녀도 무겁지 않다나

나에게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바라보기도 아까워했다

나에게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나
옆에 있으면 편안하다나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냥 바라보는 것도
아깝다고 하던
사람이 있었다

내 눈빛만 보아도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다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나에게도

변 덕                         

-유봉재-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내 마음
알 수가 없다.

행볼한 것 같다가
불행한 것 같다가
돈도 싫어졌다가
사는 게 의미가 없어졌다가

도대체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노인성 외로움인지
생에 대한 포기에서
오는 정신적 질환인지
나도 모르겠다.

내일도 자식들 불러놓고
위로나 받고 싶다.
그것도 내일 가봐야 알지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변덕

빈 방에 홀로 누워     

-유봉재-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는 일이라지만
내가 청국장 장사를 하며
살아가리라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50도 안되어서
빈방에 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망부가亡夫歌를 부를 줄은
더욱 몰랐다

60가까이 살아왔지만
아직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이라는 것을.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빈방에 홀로 누워

중 년                        

-유봉재-

어쩌나 어쩔까
내 무릎에서 나는 운율을
내 어깨에서 나는 음악 소리를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아직도 갈 길은 먼데
이 소리는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할까

주식마냥 약을 먹고
밥은 부식이 되어버린 중년
마음은 아직도 뛰어다닐 것 같은데
걷는 것 조차 힘이 드는
내 이름은 중년.

시와음악 - 봉재씨 이야기 - 중년

청국장  
                      
-유봉재-

보글보글 조선의 목소리로
청국장이 끓는다
보글보글 어머니 목소리로
담북장이 끓는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
군침이 돈다
입맛이 당긴다

어머니 어머니
조국의 우리 어머니
옷깃만 스쳐도
청국장 냄새가 난다

가슴 따듯한 우리의 어머니
오늘 식탁 위에
청국장이 오른다.

bongjae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