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초였다. 반려견 빵돌&연히와 아침 산책을 하며 경로당 옆의 쉼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누군가 ‘지나치게’ 가까이서 지저귀고 있는데, 아무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어느 날 아침 누군가 처마 밑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참새였다.

참새는 단지 '짹짹' 하지않는다. '삑-삑', '찍-찍', '삐욕', '뾰삐뾱', '삐삑', '삐빽빽', '찍쪽 찍쪽 찍쪽 뽀이쪽' 등등 다양한 소리를 낸다.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혹은 대놓고 다른 소리를 낸다. 

연히와 함께 다가가면 맹렬하게 빠르고 반복적인 소리를 낸다. 보통 보초를 서고 있는 애들이 그런다. 스타카토와 리듬이 분명한 소리는 짝을 찾는 소리였을까. 내가 욕심을 내어 몇 발자국 더 다가가니 조용해졌다.

날갯짓을 할 때 '부-웅'하는 소리가 났다.

이어피더 4주차

<물까치>
구례에 살면서 물까치를 처음 봤다. 처음 보는 파스텔블루의 날개와 꼬리깃을 보고, 저 새는 누구지 싶었다. 청초한 요정들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직박구리 못지않게 시끄러운 녀석들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삐요옹 뿅뿅뿅, 꽤--ㄲ!, 깍깍'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소리를 낸다.

비가 오면 마을 사람들은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물까치는 대담해진다. 강가의 숲에만 있던 녀석들은 날이 흐리면 경로당 바로 앞의 작은 소나무 숲을 아지트로 쓴다. 우리 마을의 분리수거함은 나무로 지어진 작은 오두막이다. '분리수거 벙커'에 잠복을 하고 그 소나무 숲을 관찰했다.

녀석들은 마을 앞 감나무에서 뭘 물고 와 소나무에 앉아서 열심히 먹는다. 바닥에 앉았다가 나무에 앉았다가 다시 마을로 날아간다. 좀 쉴만하면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차가 지나간다. 경계음을 낸다. 대피하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공사장 인부가 뭐라 하든, 직박구리가 뭐라 하든, 오색딱따구리가 옆에서 나무를 두드리건 자기들끼리 모여서 계속 뭐라 한다. 무리지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간다.

'분리수거 벙커'에서 나왔다. 
'삐삐삐삐삐삐삐삐삐ㅃ삐삐삐삐삐삒!!!!!!!!'

이어피더 5주차

어떤 할미새 한 명이 요새 마을에 자주 나타난다. 늘 혼자다. 짝을 찾는 것인지 전봇대를 옮겨 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강가 산책길 입구의 나무에 앉아서 한참을 노래를 불렀다.

비행기가 지나간다. 까치와 꿩도 무언가를 말한다. '부------까깍. 꿩꿩------웅'. 그리고 다시 조용해졌다. 할미새는 이 모든 것을 신경도 안 쓰고 계속 노래를 한다.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온 몸으로 소리를 낸다. 근처에 사는 말똥가리가 오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니 미묘하게 더 악을 쓰면서 노래를 하다가 '피피핏-'하며 날아간다.

며칠 후 비슷하게 생긴 할미새 둘을 보았다. '아 짝을 찾았구나!' 싶었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이다. 여전히 혼자다.

이어피더 6주차

<찰나>
후투티는 인가에 오지 않는다. 햇볕을 쐬며 옥상에 앉아있었다. 갑자기 후투티가 건너편 전봇대 꼭대기 위에 앉았다. '후후후-'하면서 소리까지 냈다. 흥분했지만 살금살금 옥상 계단을 내려갔다. 집에 들어가서 마이크를 들고나왔다. '끼----익' 대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후투티는 날아갔다.

꿩의 도망가는 모습만 안다. 있는 줄도 모르게 숨어있다가 '꿔꿔꿔꿩꿩 꿔겅꿔겅 꿔겅!' 튀어 오른다. 나는 늘 놀란다. 꿩은 다시 어딘가에 숨었다. 

말똥가리는 '피요-!'하고 운다. 강가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고양이 울음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분명 하늘 저 높이에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말똥가리가 틀림없다.  

숲에서 지낼 때였다. 자꾸 말똥가리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하늘을 둘러봐도 말똥가리는 없었다. 대신에 어떤 주황색 빛이 도는 새가 전봇대 위에 앉아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피요-! 피요-!' 소리를 냈다. "이 녀석이었구만!" 검은 줄무늬가 있는 어치의 독특한 시그니처 날개덮깃이 보였다. 핸드폰을 들고 녹음을 시작하니 어치는 조용해졌다. 내가 왜 갑자기 소리를 안 내냐며 궁시렁궁시렁 하니까 갑자기 '과악, 과악' 거칠게 소리를 냈다. 

어치는 먹이 터를 독점하려고 다른 새나 동물의 소리를 모방한다고 한다. 이전에 내가 강가에서 들었던 소리는 정말 말똥가리의 소리였을까? 어치? 아니면 고양이?

이어피더 7주차

아침 6시 숲의 여러 순간을 담았다. 
걸으면서, 한자리에서, 혹은 한 명의 대상에게 집중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따라 숲의 모습은 달라졌다.

이어피더 8주차

<제비>
어느 날 집 근처의 논에서 누군가 떼 지어 높이 날고 있었다.
제비가 도착했다.

우리 집과 이웃집 사이의 전깃줄에 어떤 제비가 앉아있었다.
혼자였다. 멜로디가 분명한 노래를 반복해서 불렀다.
너머로 제비집 두 개가 보였다.

다음날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되었다. 어딘가로 갔다 다시 돌아온다.
진흙집을 들렸다가 전깃줄에 앉는다.
둘이 앉아서 깃털도 열심히 고르고, 자기들끼리 얘기도 나눈다.
유창하게 뭐라 뭐라 하다가 대충 '쯔르르르르-'하면서 말을 마친다. 
'-요', '-다' 같은 어미인 걸까.

다른 제비가 그 사이를 끼어드려고 한다.  
한 명이 그 제비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한참을 공중에서 싸운다. 남은 한 명은 걔네가 싸우든 말든 관심도 없다.

폴리아모리는 제비들도 쉽지 않다.

이어피더 9주차

<옴개구리>
몇 개월 전 가장 먼저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는 참개구리였다.
조용했던 밤이 슬슬 시끌벅적해지고.
객객객- 하는 청개구리의 소리가 공간을 꽉 쥐고 있고 그 틈새로 참개구리가 그르륵-
한동안 청개구리의 소리를 들으며 저녁이구나 싶었다.

6월 22일.
낮 내내 답답했다. 차라리 비가 얼른 시원하게 퍼부어버렸으면 싶었다. 
청개구리와 참개구리의 합창소리가 바람을 거뜬하게 뚫고 날아들어 온다.
꼼짝 못 하고 조심스레 걷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야- 기야- 그야- 그야- …… 쪽! 쪽! 쪽! 쪼조조족...
옴개구리다. 언제 일어났지?

이어피더 18회차

5월 6일
우리 동네에 꾀꼬리가 도착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리가 막상 들렸을 때, 오히려 몇 번이고 의심했다.
와 정말 꾀꼬리인가? 드디어 온 건가?

 
5월 16일
이른 아침. 
한쪽에서 '휘이 휘이 화~' 하면, 저 멀리서 누가 '휘이 휘이 화~' 한다.
각자 치열하게 짝을 찾거나 세력권을 선포하는 소리일까?
하지만, 혹시나, 만약에.
그저 재미로 돌림 노래를 연습하는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 
여기서 노래의 래퍼토리를 바꾸면, 시간차를 두고 저기서 따라 부른다. 
둘의 듀엣을 한참 들었다.
깨-갞!! 이건 분명 경고다.
'피요-', '피요-'

7월17일
장마 탓인 걸까. 요새는 꾀꼬리 소리가 드물게 들린다. 
대신 매미가
츠ㅡㅡㅡㅡㅡㅡㅡㅡ

이어피더 19회차

<귀뚜라미>
귀뚜라미도 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양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고 하던데.
한쪽 날개는 빨래판, 다른 쪽은 막대기.
바이올린의 활과 현처럼.
긁고 문지르고 증폭하고. 

각자의 속도로 비벼댄다. 
쯔-쯔-쯔- 뛰르르- 뛰뛰뛰르르-
그 빼곡한 리듬 사이로 무당개구리가 끼어든다.
허- 	하- 	허-

아주 만약에 한쪽 날개만 있는 귀뚜라미 둘이 있다면,
활만 있는 귀뚜라미와 현만 있는 귀뚜라미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의 날개를 비빈다면,
그 진동의 폭은?

이어피더 20회차

<군산>
전라북도 군산에 처음 가봤다. 
군산 유학 이라는 프로그램의 일부인 <인간없는소리>에 참여했다.
옛 군산시민회관에서 참여자들은 각각 멸종한 생명들의 닉네임을 받았다.
나는 이틀간 '독도 강치'였다.

"시간은 마음이 쓰이는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닐까요?"라고 날씨가 말했다. 
내 옆에서 스텔러 바다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옥산면에 있는 습지대인 백석제에 갔다.
우리는 각자 흩어져 마이크를 이리저리 들이댔다.
쏴아-말매미 소리가 짙게 깔린다 끊기지 않고 그 속에서 인트로-클라이막스-아웃트로가 분명한 애매미의 소리를 -부-웅-
비행기가 지나간다. 머리 위로.

다음날 비응마 파지길. 
파도는 일렁대지 않고 출렁댔다.
철썩! 철-썩! 
물은 바위를 때렸다.  바위에는 바다의 주름이 새겨져 있다.
머리 뒤로 갈매기가 지나간다. 아까부터 나를 위아래로 흘겨보던 녀석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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