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04월27일 서울대 예술계 식당 점심
메뉴 1. 메밀 소바+참치 김치볶음밥+새우튀김&야채 튀김+바나나칩 샐러드

일본 온천 마을 근처의 공항 식당이었습니다. 창밖은 어두웠고, 형광등은 밝았습니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좁은 식당은 시끄러운데 메밀 소바가 올라간 우리 테이블 위만 조용했습니다. 긁혀서 뾰족해진 마음을 빗어내지 못한 채 말했습니다, “내랑 같이 다니기 싫으면 같이 다니지 말자.” 여행도 다 끝난 마당에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일까요. 아무 말도 없이 저는 메밀 소바를 꼭꼭 씹었고, 엄마는 튀김을 꼭꼭 씹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용인으로 가던 차 안에서 엄마가 별안간 펑펑 울었습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그렇게 서럽게 우는 엄마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엄마가 김미경 씨를 보여줄 때마다 나는 다시 스무 살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여기, 우리 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나의 오랜 친구는 자꾸만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표정을 짓고 산다고 말해줍니다. 엄마는 메밀 소바를 싫어합니다. 1979년쯤 은행에서 일할 때 칼국수를 너무 많이 먹어버려서 면 종류는 다 질려버렸다고 합니다.

20210427_메밀소바_예술계식당

2021년 04월27일 서울대 예술계 식당 점심
메뉴 2. 셀프라면+밥+김치

와, 그렇게 습한데, 그렇게 더운데. 굳이 한강에서 라면을 먹어야 했을까요. 7월 중순이었습니다. 제 생일을 조금 비켜 그 친구를 태운 비행기가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어쨌든 서울에 온 친구에게는 한강에서 라면을 먹인다는 것이 제 고집이고 철학이었습니다. 밖에서 라면을 먹다 젓가락을 가지러 한 번, 숟가락을 가지러 한 번, 휴지를 가지러 한 번, 자꾸만 편의점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편의점 안은 시원했으니까요. 이별을 합의하기 위해 긴 산책길에 나섰는지, 긴 산책길에 나섰기에 이별을 합의할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날 합의된 것은 없습니다. 그가 “그럼 우리 이제 헤어질까?”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니가 그렇게 먼저 말하면 내가 차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라며 싸인을 거부했거든요. 그렇게 더웠던 날, 그렇게 뜨거운 라면을 먹지 않았다면 하루가 좀 더 산뜻할 수 있었을까요? 3개월 뒤의 서늘한 밤 10시 10분에 저는 그에게 치킨 너겟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그는 싫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20210427_셀프라면_예술계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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