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요새 지각이 심한 것 아닌가?"
"네.. 맞습니다.."

일구씨는 습관적으로 기어나오는 '죄송합니다'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러자 '네' 하는 단답만 남았는데, 일구씨는 그대로 대답할만한 배짱이 없었으므로 잡히는 대로 '맞습니다'를 슬그머니 덧붙였다.
'아... 너무 순순히 인정해 버린꼴이 되어버렸나.. 나 지금 일을 크게 만드는 중인가 그치만 이제 억울해서 더 이상은 죄송하지도 않은 것에 죄송하다는 말하기 싫다구 '

일구씨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가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은 일종의 오기였다. 평소 같았으면 상사의 윽박지름이 잠시 멈출 때마다 죄인 같은 목소리로 '네 죄송함다'를 연거푸 채워넣었을 터였다. 원래 그의 성격이 그랬다.  
하지만 저게 다 무슨 의미인가? 일구씨는 죄송하지 않았다. 단지 상사의 입을 막고 싶을 뿐이었다.
그는 지금 상사에게 한소리 듣지 않더라도 '지각사유서'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결재를 받아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사고과에 어떻게든 반영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일구씨의 지각은 일구씨가 책임지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마음이 편해졌다.
더불어 이 일에 감정을 소모해가며 한소리 하는 상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의미 없는 굽신거림에 염증이 났다.

"으응? 왜 이리 뻔뻔한가? 미안한 마음이 없어?"
"(화들짝) 네..??예??"
"으응? 이게 제정신이야 지금 이 상황에 멍때리고있어? 미안한 마음이 없냐고"
"... 제가 왜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나요?"
"허 참나..당신 미쳤어? 정신 나갔어? 출근 시간은 회사와의 약속이야 이 사람아"

일구씨의 지각

Yong